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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미 고택(石鼎美古宅)

업데이트 됨: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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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청 강희 말년부터 옹정 초기까지 부성 ‘교(郊)’ 상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졌고 이들은 ‘행교(行郊)’ 또는 ‘교행(郊行)’이라고 불렸습니다. ‘교’는 타이완과 중국 사이에서 수출입 무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상인, 또는 그런 상인들로 조직된 상업 조직을 일컫습니다. 부성의 교상 삼교동사(三郊董事) 석시영(石時榮)이 만든 ‘석정미(石鼎美)’라는 호는 대형 쌀과 설탕 무역 상호로, 석정미 고택은 석시영이 타이완으로 적을 옮긴 후  향시에서 합격한 넷째 아들 석요종(石耀宗)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칠포삼(七包三)’식 민난식 남향 전통 건물로, 청 도광 23년(1843년)에 완공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연 침식과 장기간 미관리로 저택 내외부의 건자재와 회화, 조각, 전점, 이소 등 장식이 상당히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석만수(石萬壽) 교수는 “저택을 만들 당시 향시에 합격하기 전이라 교척조(翹脊厝)를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호조(護厝)부터 지었죠. 그때 다들 ‘저택을 만들려고 호조부터 짓는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석시영이 석정미 고택을 지을 때 집을 짓는 순서대로 짓지 않았거든요.”라고 했습니다. 당시 <청회전(清會典)> 저택 제도의 제약으로 석시영은 아들의 향시에 엄청난 희망을 걸고, 석정미 가게 뒤쪽에 건물을 지을 준비를 완료해 놨습니다. 석정미 고택은 석씨 집안 가게 뒤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당시 대서문 밖에 있는 유일한 저택이었습니다. 나중에 확장한 건물은 일부가 철거되었지만 석정미 저택의 원래 부분은 보존 상태가 훌륭합니다. 중시구 번화가에서 위치한 탓에 더욱 조용해 보입니다. 석씨 가문은 청나라 시기에 국학생과 상생, 우람생, 거인 등 과거 합격자를 적지 않게 배출했습니다. 지금 후손들 중에도 시인과 문학인, 역사학자, 지리학자 등 다양한 영역의 교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석씨 집안은 학자의 향기가 물씬 나는 집안입니다.

민국 86년(1996년) 석정미 저택의 현재 거주인인 석만수 교수는 타이난 시정부에 고적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타이난시에 있는 청나라 시기 전통 민간 건물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완벽한 석정미 고택를 시 지정 유물에 넣어달라는 의미였습니다. 

관광 명소 정보

전화 +886-6-2213597

주소 대만타이난 시중시 구西門路二段225巷4號

카테고리 현지예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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